어려운 시기입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장기화로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고통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지만, 조금 더 힘든 사람과 조금 덜 힘든 사람은 있습니다. 소아청소년, 그리고 이들을 돌보는 부모님이야말로 코로나-19 취약집단이라고 할 수 있죠.
한 연구에 따르면 세 명 중 한 명은 코로나 19와 관련된 스트레스나 불안,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특히 육아 중인 부모의 양육, 교육 부담이 크게 늘었습니다. 학교가 하던 일을 가정이 대신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아이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대구광역시 교육청이 실시한 코로나-19 이후 학교재난정신건강 평가 결과에 의하면 많은 학생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우울, 불안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정말 코로나 때문일까요? 조사에 의하면 정서적 위기를 경험했다고 보고한 학생의 비율은 7.6%였는데, 61.7%의 학생이 코로나-19 이후 정서적 위기 경험을 더 많이 겪었다고 응답했습니다. 구체적으로 학생들은 코로나-19가 크게 유행하는 시기에는 두려움을 주로 느꼈고, 유행 전후로는 다른 감정들보다 무력감을 많이 느꼈다고 합니다. 주요 원인은 학업 및 진로(67.7%), 정신건강(38.8%), 가족갈등(35.4%) 순이었지만, 그 기저에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 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서 조사한 청소년 가족갈등 상담건수를 살펴보면 2019년에 비해 약 51%가 증가했습니다. 이 통계 역시 코로나 19의 유행이 가정에 미치는 영향을 체감하게 해줍니다.
부모도 힘들고, 아이도 힘들기에 부모-자녀 갈등이 심해집니다. 아이를 나무라는 일도 늘어나고, 부모에게 대드는 일도 잦아집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부부 갈등도 심해집니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에서 이혼율이 급증하였고, 결국엔 코로나 이혼(Covidivorce)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죠. 코로나-19가 이혼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닐 겁니다. ‘코로나가 두려우니 이혼하자!’ 이런 사람은 아마 없겠죠.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심리적 스트레스, 이차적인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지지망의 약화 등으로 인해 기존에 잠복해있던 갈등이 증폭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정말 가족끼리 거리를 두는 비극으로 진행하는 것이죠.
갈등은 종종 더 큰 비극으로 진화합니다. 바로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입니다. 전국적인 통계는 아직 없지만, 일부 지방청 및 유관기관의 관련 신고 건수 통계를 보면 관련 신고 건수가 늘어나 심각한 상황임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습니다. 전라북도 경찰청 및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지난해보다 32.3%나 증가했습니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가정 내 아동학대 신고가 전년 대비 약 2배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럼 이러한 가족 갈등의 원인을 알아볼까요. 크게 4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 감염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처음에는 중국이나 일본, 미국, 유럽 등 특정 국가로부터의 입국자를 두려워했죠. 국경만 걸어잠그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죠. 하지만 대구와 신천지, 정신병원, 콜센터, 이태원 클럽 등 다양한 취약 집단으로 감염이 확산되면서 이제 어느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당장 내일 내가 확진자가 되어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확진자 중 약 20%는 발병경로를 알 수 없는 깜깜이 환자거든요.
살짝 기침과 미열만 있어도 갑자기 불안해집니다. 지하철과 버스에 같이 탄 모르는 사람들. 과연 누가 감염자일까요? 일상의 공간은 상시적인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해졌습니다. 부적처럼 마스크를 챙기고 다니지만, 얇은 푸른색 부직포 한장으로는 영 미덥지 않습니다. 경계를 걷는 듯한 삶이 벌써 9개월째입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때, 심한 심적 고통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적 정서는 주로 가족이나 친한 친구, 동료에게 투사됩니다. 우울은 분노를, 분노는 짜증을, 짜증은 폭력을 부릅니다. 물론 사람마다 부정적 정서를 담아두는 내적 능력이 다릅니다. 하지만 반년 넘게 이어지는 불안과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실상 우리 모두는 이미 한계를 넘은 상태죠.
둘째, 경제적 어려움입니다.
관광, 여행 등 코로나-19의 유탄을 맞은 기업이 도산하고 무급 휴가와 해고가 크게 늘었습니다. 경제적 공동체로서의 가족은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아들은 피아노를 포기해야 하고, 딸은 댄스 학원을 포기해야 합니다. 더 큰 집으로 옮기려던 아빠의 계획도, 20년된 고물차를 바꾸려던 엄마의 계획도 모두 올스톱입니다. 은행 빚을 갚을 길은 점점 막막해지고, 퇴직금을 털어넣어 오픈한 음식점은 개점 휴업 상태입니다. 가족 갈등이 생기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입니다.
셋째, 교육 공백과 돌봄 부담입니다.
초중고 대부분이 온라인 수업 위주로 운영되면서, 학부모는 이른바 풀타임 돌봄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와 교사의 기능이 거의 중단된 상태입니다. 사실상 모든 학생이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셈이죠. 가정주부, 워킹맘 할 것 없이 자녀 돌봄과 교육에 대한 부담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졸지에 교사의 역할을 떠앉게 되었지만, 준비되지 않은 재택 수업이 잘 굴러갈 리 없습니다. 아이도 힘듭니다. 선생님도, 친구도 없습니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닌지 가늠할 준거가 없습니다. 이러한 막막한 상황은 부모의 잔소리, 아이의 반항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넷째, 보조적 네트워크의 감소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조부모의 육아 참여가 제한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는 고령자에게 가장 위험하다니, 도움을 청하기도 어렵습니다. 학원이나 과외활동, 집단 활동이나 수학여행, 친구와의 여가 등도 모조리 제한된 상태입니다. 학교도 쉬고, 학원도 쉬는데, 놀이터마저도 한산합니다. 도대체 아이들은 어디 있는 것일까요? 좁은 집안에서 부모와의 갈등은 점점 심해지고, 이러한 어려움을 다독여줄 보조적인 사회 연결망은 끊어진 상태입니다. 취약 집단의 아이들은 사실상 방치되어 있습니다. 라면 형제의 슬픈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해결책을 이야기해볼까요?
첫째, 재정적 지원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늘어난 보육과 교육 부담에 대한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재난은 약한 곳에서 먼저 일어납니다. 코로나-19는 모두의 삶에 큰 영향을 주고 있지만, 고통의 깊이는 모두 다릅니다. 경기도 교육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취약 계층 학생일수록 온라인 수업을 더 못 따라가고, 시간을 더 많이 허비했습니다. 부모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적었고, 부정적 정서가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그동안 경제적, 정서적 격차를 줄여주던 학교의 기능이 사라진 것입니다. 집안 형편이 어렵거나 부모 돌봄이 열악한 아이들은 거의 내버려진 상태입니다. ‘한달만 버티자’하던 것이 이제는 1년을 갈지, 2년을 갈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지원없는 자가 학습과 돌봄 노동 속에서 한계 가정부터 무너지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집안은 어떻게든 버틸 것입니다. 엄마나 아빠가 재택 근무를 할 수 있는 가정은 어떻게든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많은 가정의 아이들은 하루종일 ‘알아서’ 지내야 합니다.
둘째, 가족 활동을 늘려야 합니다.
새로운 환경은 더 많은 가족 간의 접점을 만들어냅니다. 가족이 모여 텔레비전만 보던 가정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낯설고 불편합니다. 하루종일 스마트폰만 봅니다. 이래서는 곤란합니다.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를 같이 보고, 독서활동, 보드게임, 집안 꾸미기 활동 등을 통해 고통의 시간을 어떻게든 의미있게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자녀의 놀이 욕구를 만족시켜주고, 코로나-19의 스트레스를 긍정적인 추억으로 승화시켜주는 것이죠. 진료실에서 자주 받는 질문입니다. ‘어떻게 삐딱한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방법은 있습니다. 함께 있는 시간에 공동의 활동을 하며 행복한 추억을 쌓는 것입니다. 부모도 즐겁고, 자식도 즐거워야 합니다. 긍정적 경험은 가족의 관계를 더 끈끈하게 엉키게 해줄 겁니다. 온라인 쇼핑이나 색다른 요리 만들기는 누구나 좋아하는 활동입니다. 자녀와 함께 하면 더 색다른 추억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가족 외 친족과의 연대를 늘리는 것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가족 외의 대인관계가 크게 축소되었습니다. 그래도 마음 놓고 만날 수 있는 대상은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삼촌, 사촌, 조카 같은 친족입니다. 가족 내에서 해결하기 어려웠던 문제에 대해 친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삼촌, 고모가 양육의 동반자가 되어 부담을 줄여줄 수 있습니다. 자녀 입장에서도 사촌과의 교류를 통해 최근 들어 부족해진 또래나 선후배 관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역설적으로 가족, 친족 중심의 네트워크를 복원하는 예상치 못한 현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나마 긍정적인 효과라고 할까요?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경우는 스스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 가지 노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가족 갈등이 지속되는 경우, 가족 중 누군가가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 수면이나 식습관에 현저한 변화가 있는 경우, 2주 이상의 심각한 우울감이나 흥미 저하를 지속적으로 보이는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주변에 어려움을 겪는 가정이 있다면, 적극적인 도움을 받도록 권유해주기 바랍니다. 특히 아동학대나 방임이 의심되면 최우선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코로나19 심리방역을 위한 마음건강지침이나 정신건강상담전화(1577-0199)나 자살예방 상담전화(1393)을 통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