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계 혜 연
“그날은 불현듯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그날은 불현듯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이것은 저의 실화이자 실제로 진짜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학교생활을 평범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 없이 혼자였습니다. 유일하게 제 옆에 있어 준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중학교 때부터 사귀어 온 마지막 단짝 친구이자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그 친구와 연락이 두절 되었고, 단짝 친구 생각이 지금도 많이 떠오릅니다. 처음 정신병에 걸린 이후 하루도 그 친구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지금 저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고 조금 더 당당해진다면 그 친구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저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날따라 하늘은 매우 어두컴컴하고 흐려서 마음이 몹시 우울했습니다. 엄마는 이상한 TV의 소리와 함께 저보고 저리가라고 화를 내셨고 TV 속의 뉴스는 뭐라고 지껄이면서 저를 화나게 했습니다. 괜히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정말 죽을 만큼 버티고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환청이나 망상 같은 증상이었던 같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그해 겨울, 저는 그날 아침 학교를 안가고 결석을 하려다가 불현듯 어떤 환시와 마주하면서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제 자신이 저를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무아지경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로 추운 날 반팔과 맨발로 거리를 뛰어다녔습니다. 거리를 뛰어 다닌지 20분쯤 후, 여기가 어딘지 의식을 잃은 채 길에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 갔습니다. 그때가 이미 9년 전 일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힘든 과정이지만 그 과정을 견디어 낸 제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시간 감각을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느낌에 이르러 잠깐 눈을 떴을 때는 곁에 아버지와 오빠가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뭐라고 횡설수설하고 있었고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주는 한 알의 약도 제대로 복용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폐쇄병동에 입원하여 양극성 정동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론 병원에서 맨날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고, 마음 한 구석이 쓰라린 기억이 남습니다. 그리고 놀란 점도 있었는데 입원을 했던 3개월 동안 제가 밥을 먹고 자고 약을 복용하고 자는 일상이 반복되다보니 20kg 체중이 증가하였습니다. 퇴원 후, 학교에 돌아갔으나 무척 외롭고 힘들게 생활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벅차고 힘든 과정이지만 그 과정을 견디어낸 제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로부터 퇴원하고 2년 후 개인적인 사정으로 외할머니 댁에서 잠시 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이때부터 제가 경험하지 못했던 증상들이 하나둘씩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 약물복용의 중요성을 잘 알지 못했고 증상 관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환시, 환촉, 망상 증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살고 있던 아파트 입구에 들어가면 저도 모르게 어지러움을 경험하였고 할머니가 환시로 보이기도 하였고 밖에서 바라본 아파트의 창문들이 처녀귀신으로 보였습니다. 당시 세월호참사가 사회적 이슈였는데 세월호참사가 저 때문에 일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는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으면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몇 년 뒤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 같은 사람이 저의 뒤를 따라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길을 하염없이 걸어 길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아버지께서 저를 찾았고 택시를 타고 저는 그렇게 두 번째 정신병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4년도 5월 봄, 저는 용인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입원은 저의 병을 인정하지 않고 부정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면 두 번째 입원은 저의 병을 이해하고 제 마음이 서서히 안정적으로 변해가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그래, 앞으로 약도 잘 챙겨 먹고 정신과적 증상이 바로 나타나면 병원에 입원하자. 몇 개월이든 괜찮으니 병만 나으면 돼.’ 이 생각뿐이었습니다.
"학교생활과 낮병원을 병행한다는 것이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으나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기에 인내했습니다."
2015년도 봄, 대학교 복학을 하였고 증상은 점점 좋아지고 있는데 많은 약을 복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불규칙적인 약물관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환시, 환청 증상이 다시 나타나게 되었고 다시 두려워졌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 집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박수소리가 들렸고 탁자 밑에 검은 물체가 보여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약물과 증상관리를 위해 대학교 생활(통학)하면서 용인정신병원 낮병원을 다녔고 학교생활과 낮병원을 함께 병행한다는 것이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으나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기에 인내 하였습니다. 2017년도 가을, 무사히 학업을 마치고 졸업과 장애인 등록을 하였습니다.(참고로 저는 사회복지학과 졸업생으로 2급 사회복지사입니다.)

졸업 후, 낮 병원을 계속 이용하였고 약물교육, 합창, 요리실습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같은 병을 앓고 있지만 병을 극복해 나가고 있는 다른 회원들을 본받고 싶었고, 제 자신을 더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타자를 치고 있지만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일상생활훈련을 위해 아버지와 논의하여 이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음에 있는 6개월 동안 일상생활능력 향상을 비롯하여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성격도 활발해 졌고 편안하고 별 탈 없이 잘 지냈습니다. 이음 퇴소 후 동대문구에 있는 공동생활가정 길벗둥지로 거처를 옮겼고 주간에는 정신재활시설 마인드에 다니며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였습니다. 2020년 동대문구청 ‘장애인일자리사업’ 대상자로 선발되어 현재 전농1동 주민센터에서 일일 4시간제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처음 일을 하다 보니 실수도 많고 주민센터 직원들과의 관계 형성에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직원들과도 친해지고 업무도 익숙해 지면서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매일 설레임을 안고 출근하고 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아버지가 하시는 사업도 잘되시고 오빠 가족도 모든 뜻하는 바대로 잘 이루어져서 현재 안정을 찾고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편견과 불이익에 맞서 정신장애인 인권신장과 옹호에 한 걸음 다가서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일을 하게 되면서 또한 마인드의 취업회원들을 보면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외부적, 사회적 차별 인식으로 인해 취업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일반적인 현실에 통감하며 사회적 편견과 불이익에 맞서 정신장애인 인권신장과 옹호에 한걸음 다가서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많은 사람들 앞에 나가 정신장애인의 인권과 옹호를 위한 활동을 하는 것도 인권신장과 옹호의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지금 저의 자리에서 저에게 주어진 역할과 업무, 몫을 성실히 해 나간다면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준다면, 그것 역시 정신장애인의 인권신장과 옹호의 활동 방법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가끔씩 생각을 해봅니다. 왜 하필 나야(why me?)’그러나 10대 시절의 아픔을 이겨내고 (현재 진행형이지만) 멋지고 당당한 20대를 살고 있는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려는 자신감을 키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같은 길을 걷는 정신장애인분들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릿길도 첫걸음부터 이듯이 차근차근 자신의 미래 인생을 준비하고 인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이겨내며, 열심히 살아가면서 선한 영향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확대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마인드포스트> 주최, 제1회 정신장애인 문예대전 '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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